2020.09.24
'맨 땅에 헤딩' 많이들 들어보셨고 흔히 쓰는 말이죠.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고 아직도 그러고 있습니다.
지난 2년 가까이 진행한 교섭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노동조정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이 다 첫 경험이었지요.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강력한 조력을 얻을 수 있는 상급단체에 속하지 않은, 혹은 모시지 않은 '기업노조'로 남아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어리석은 짓이었을까요?
기존 교섭이 진행되고 있기에 거부하는 회사로 인해 교섭을 시작조차 못하는 동료 조합의 요청이 있어 교섭을 중단하고 함께 공동교섭단을 꾸려 새로운 교섭을 시작코저 한다는 소식은 이미 알려 드렸죠. 그렇게 구성된 공동교섭단의 첫 회의를 22일(화) 저녁에 가졌습니다. 그리고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된 첫 모둠에서 비중있는 주제는 '상급단체로의 교섭 위임'이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공동교섭에 참여한 노조들 중에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조합은 한국노총(한노)을 상급단체로 하여 결성됐습니다. 또한 교섭단내 맨파워 면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요. 그런 부러운 피지컬을 갖췄음에도 회의를 주관하신 분께서는 경험과 전문역량의 부족 등을 말씀하시며 상급단체에 교섭을 위임코저 한다고, 동료 조합들에도 동의를 구한다고 했을만큼 교섭이란 결코 만만치 않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미천한 경험에 비해 다양한 현장에서 오래 축적된 실전 노하우를 갖춘 한노가 주도해 교섭을 진행한다면, 분명 좀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보다 발빠르게 회사는 얼마 전 한노 출신 인사를 영입해 교섭을 맞이할 준비도 착실히 해놨거든요.
이제 공동교섭단이 한노에 교섭을 위임한다면? 손발 맞추며 보다 효율적으로, '교섭'이란 뜻에 부합하는 적절한 선에서 회사도 면을 세우고 한노는 나름 위상을 높이며 우리 모두에게도 부족하지 않을 좋은 협약을 맺을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별 것 아니라고 지나치면서 중요한 것을 우린 놓치게 될지도 모를거란 우려가 남습니다. 더디고 부족해도 우리 스스로 무언가 해 내는 것 말이죠. 경험과 역량을 갖춘 조력자의 동참,조언은 언제나 환영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부를 내 맡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삼성전자노동조합은 공동교섭단 첫 회의, 안건 중 상급단체로의 교섭 위임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 노조는 함께 참여중인 모든 동료 조합들이 공동교섭단 내 각자의 역할을 민주, 자율적인 결정으로 위임할 수 있다는 원칙에 동의합니다.
가능한 조력과 동참은 고맙게 받아들일 것이나, 당 노조는 교섭 전체를 위임하지는 않을 것이며, 향후 당 노조 이외의 노조(들)로부터 해당 노조의 역할을 위임 받은 단체 및 당 노조처럼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참여하는 동료 노조(들)와 다함께 '공동교섭'에 성실히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