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3년째...효과는 어느정도였을까?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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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8회 댓글 0건 작성일 22-05-12 07:10본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3년째...효과는 어느정도였을까? (naver.com)
[경향신문]
학교에서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면 “어른이 될 때까지만 참자”며 견디기 쉽다.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면 “사회로 나갈 때까지만 참자”고 생각할 지 모른다. 어른이 돼 사회에 나오면 괴롭힘에서 벗어날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걸 다들 안다.
퇴사 이유 1위로 자주 꼽히는 게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찍히거나 출신·외모·성향 등 갖가지 이유로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 자신과 가족의 생계 때문에 꾹꾹 참지만, 참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생기고, 군 의문사에 대한 진상조사도 이뤄지곤 했지만 직장은 예외였다. 성인이고 사회인이니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오는 7월이면 이 법이 시행된 지 만 3년이 된다.
■업무상 질책이라도 지나치면 ‘괴롭힘’
법이 규정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여기에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을 경우’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업무상 필요한 질책’이라도 ‘적정 수준’을 넘으면 ‘괴롭힘’으로 본다.
한 어린이집 학부보들이 교사 A씨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어린이집 원장은 A씨를 불러 업무상 미진한 점을 수차례 질책했다. ‘교사 회의’에서 공개사과도 요구했다. A씨는 학부모회의에 불려나갔고, 학부모들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은 뒤 실신했다.
법원은 어린이집 원장의 질책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에게 질책받을 사유가 있더라도 “일상적인 지도 또는 조언 수준을 넘어서 지속적이고, 공개적인 질책을 통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당한 전보도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여기서 ‘부당’ 여부를 가르는 것 역시 ‘적정성’이다. 동료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B씨는 회사로부터 면보직 발령을 받았다. 근무장소도 배정받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거나 필수시설도 없는 곳에서 일해야 했다. 회사는 4개월이 지나서야 B씨의 징계절차에 착수했다. B씨에 대한 사측의 조치에 대해 재판부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대기발령’이라고 판단했다. 또 ‘대기발령은 3개월 이내’여야 한다는 사칙에도 위배된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봤다.
■업무연관성과 직장 내 우위
업무와 관련 없는 이유로 괴롭혔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C씨는 밤 9시쯤 직장 동료가 다른 직원과 근무일정에 관해 나누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동료는 C씨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했고, C씨는 “가만 안둔다, 죽여버린다”고 했다. C씨는 2시간 뒤에도 그 동료에게 폭언을 했다. C씨는 모욕 행위로 1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일과 시간 이후에, 사적 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워크샵이 끝나고 귀가를 위해 택시를 기다리다 후임 직원에게 눈뭉치를 던진 D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폭행에 대한 배상금 350만원’ 판결을 받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이나 장소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직장 내 성회롱’ 사건 관련 판결에선 ‘회식을 마친 후 귀가하는 도중은 회사의 업무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전’이라며 업무연관성을 인정한 경우도 있다. 또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괴롭혀야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직장에서의 우위’에는 ‘지위의 우위’뿐 아니라 ‘관계의 우위’도 포함된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직위가 낮더라도 ‘피해자의 상급자와 합세하는 방법으로 관계상의 우위를 점한 경우’ 직장 내 우위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사용자는 형사처벌될 수도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처벌받는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최근 법원은 괴롭힘 피해를 신고하고 결근한 노동자를 해고했다가 복직시킨 뒤 전보발령을 낸 사용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또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하고 피해자의 진술 내용을 가해자에게 유출한 사용자에게 1200만원의 배상 책임을 지웠다.
박점규 ‘직장 갑질 119’ 연구위원은 11일 “법적 근거가 없어 위자료 인정이 안되던 괴롭힘 행위에 대해 배상 판결이 나오기 시작하고, 그 규모도 200~300만원 수준에서 1000만원에 달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징계 무효 소송 등을 우려해 직장 내 괴롭힘에 소극적 대처하던 회사들이 보다 적극적인 징계에 나서게 된 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3년 간 거둔 성과”라고 했다.
■진짜 괴롭힘은 묻힌다
법의 한계도 뚜렷하다. 법원은 ‘피해자의 주관’이 아닌 ‘피해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보통의 사람 입장’에서 괴롭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또 ‘고통과 근무환경 악화라는 실제 결과가 발생했음이 인정돼야 한다’고 한다. ‘제3자가 납득할 정도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폭언·폭행, 부당전보, 공개질책, 성희롱 등 명확한 위법 행위가 수반되면 입증이 용이하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괴롭힘이 훨씬 많다. 이 경우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증명하기도 어렵고, 설혹 증명한다고 해도 인정받기는 더 어렵다.
한 노무사는 “모든 팀원이 피해자와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밥도 같이 안먹는 이른바 ‘투명인간 갑질’, 유독 피해자에게만 ‘업무적정성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을 정도의 지적’을 집중하는 행위, 피해자에게만 업무를 지나치게 많이, 또는 적게 주는 행위 등은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절반 가까이는 ‘폭언’이다. 녹음이나 메시지 등 소위 ‘딱 떨어지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더라도 수집하기가 쉽지 않다. 피해자는 대개 직장 내에서 하급자다. 가해자보다 근무 기간이 짧고 아는 사람도 적다. 목격자나 동료도 대개는 가해자와 친분이 있거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이기 쉽다. 피해자가 동료들로부터 진술서 한장 받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지난해말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1만3000여건 중 43.5%가 ‘입증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취하됐다. 박성우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처럼 피해자 중심주의를 확대해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합리성에도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등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해자도 처벌해야 VS 오히려 역효과
그렇다고 법원이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토대로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다. 결국 전문성과 공신력이 있는 노동당국이 괴롭힘의 진위를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노동청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전담하는 근로감독관들이 있다. 그러나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사측이 이미 조사한 걸 우리가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근로감독관들이 직접 무기명 설문조사를 돌려보는 등의 적극적 조사에 나설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선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법체계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조사와 피해자 보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사용자의 자율에 맡기거나 유도하는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해자까지 처벌하면 ‘괴롭힘 인정율’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해자가 형사재판에 넘겨지면 ‘범죄 입증은 무죄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대원칙이 적용된다. 그렇지 않아도 입증이 어려운 ‘괴롭힘 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형사재판의 무죄 판결을 민사재판에서 반박 증거로 내밀 경우 피해자가 배상받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법 조항에서 사용자의 조사와 조치 책임을 보다 구체화하고,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괴롭힘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현장의 변호사와 노무사들은 법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박성우 노무사는 “‘직장 내 성희롱 금지법’이 직장 내에 성인지 감수성을 뿌리내리게 했듯이 괴롭힘은 범법 행위라는 ‘괴롭힘 감수성’을 사용자나 노동자가 갖게 될 때 법이 당초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면 “어른이 될 때까지만 참자”며 견디기 쉽다.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면 “사회로 나갈 때까지만 참자”고 생각할 지 모른다. 어른이 돼 사회에 나오면 괴롭힘에서 벗어날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걸 다들 안다.
퇴사 이유 1위로 자주 꼽히는 게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찍히거나 출신·외모·성향 등 갖가지 이유로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 자신과 가족의 생계 때문에 꾹꾹 참지만, 참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생기고, 군 의문사에 대한 진상조사도 이뤄지곤 했지만 직장은 예외였다. 성인이고 사회인이니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오는 7월이면 이 법이 시행된 지 만 3년이 된다.
■업무상 질책이라도 지나치면 ‘괴롭힘’
법이 규정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여기에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었을 경우’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업무상 필요한 질책’이라도 ‘적정 수준’을 넘으면 ‘괴롭힘’으로 본다.
한 어린이집 학부보들이 교사 A씨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어린이집 원장은 A씨를 불러 업무상 미진한 점을 수차례 질책했다. ‘교사 회의’에서 공개사과도 요구했다. A씨는 학부모회의에 불려나갔고, 학부모들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은 뒤 실신했다.
법원은 어린이집 원장의 질책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에게 질책받을 사유가 있더라도 “일상적인 지도 또는 조언 수준을 넘어서 지속적이고, 공개적인 질책을 통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당한 전보도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여기서 ‘부당’ 여부를 가르는 것 역시 ‘적정성’이다. 동료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B씨는 회사로부터 면보직 발령을 받았다. 근무장소도 배정받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떠돌거나 필수시설도 없는 곳에서 일해야 했다. 회사는 4개월이 지나서야 B씨의 징계절차에 착수했다. B씨에 대한 사측의 조치에 대해 재판부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대기발령’이라고 판단했다. 또 ‘대기발령은 3개월 이내’여야 한다는 사칙에도 위배된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봤다.
■업무연관성과 직장 내 우위
업무와 관련 없는 이유로 괴롭혔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C씨는 밤 9시쯤 직장 동료가 다른 직원과 근무일정에 관해 나누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동료는 C씨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했고, C씨는 “가만 안둔다, 죽여버린다”고 했다. C씨는 2시간 뒤에도 그 동료에게 폭언을 했다. C씨는 모욕 행위로 1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일과 시간 이후에, 사적 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워크샵이 끝나고 귀가를 위해 택시를 기다리다 후임 직원에게 눈뭉치를 던진 D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폭행에 대한 배상금 350만원’ 판결을 받았지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진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이나 장소가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직장 내 성회롱’ 사건 관련 판결에선 ‘회식을 마친 후 귀가하는 도중은 회사의 업무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전’이라며 업무연관성을 인정한 경우도 있다. 또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괴롭혀야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직장에서의 우위’에는 ‘지위의 우위’뿐 아니라 ‘관계의 우위’도 포함된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직위가 낮더라도 ‘피해자의 상급자와 합세하는 방법으로 관계상의 우위를 점한 경우’ 직장 내 우위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사용자는 형사처벌될 수도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처벌받는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최근 법원은 괴롭힘 피해를 신고하고 결근한 노동자를 해고했다가 복직시킨 뒤 전보발령을 낸 사용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또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하고 피해자의 진술 내용을 가해자에게 유출한 사용자에게 1200만원의 배상 책임을 지웠다.
박점규 ‘직장 갑질 119’ 연구위원은 11일 “법적 근거가 없어 위자료 인정이 안되던 괴롭힘 행위에 대해 배상 판결이 나오기 시작하고, 그 규모도 200~300만원 수준에서 1000만원에 달하는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징계 무효 소송 등을 우려해 직장 내 괴롭힘에 소극적 대처하던 회사들이 보다 적극적인 징계에 나서게 된 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3년 간 거둔 성과”라고 했다.
■진짜 괴롭힘은 묻힌다
법의 한계도 뚜렷하다. 법원은 ‘피해자의 주관’이 아닌 ‘피해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보통의 사람 입장’에서 괴롭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또 ‘고통과 근무환경 악화라는 실제 결과가 발생했음이 인정돼야 한다’고 한다. ‘제3자가 납득할 정도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폭언·폭행, 부당전보, 공개질책, 성희롱 등 명확한 위법 행위가 수반되면 입증이 용이하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수반되지 않는 괴롭힘이 훨씬 많다. 이 경우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증명하기도 어렵고, 설혹 증명한다고 해도 인정받기는 더 어렵다.
한 노무사는 “모든 팀원이 피해자와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밥도 같이 안먹는 이른바 ‘투명인간 갑질’, 유독 피해자에게만 ‘업무적정성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을 정도의 지적’을 집중하는 행위, 피해자에게만 업무를 지나치게 많이, 또는 적게 주는 행위 등은 증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절반 가까이는 ‘폭언’이다. 녹음이나 메시지 등 소위 ‘딱 떨어지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더라도 수집하기가 쉽지 않다. 피해자는 대개 직장 내에서 하급자다. 가해자보다 근무 기간이 짧고 아는 사람도 적다. 목격자나 동료도 대개는 가해자와 친분이 있거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이기 쉽다. 피해자가 동료들로부터 진술서 한장 받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지난해말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1만3000여건 중 43.5%가 ‘입증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취하됐다. 박성우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처럼 피해자 중심주의를 확대해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합리성에도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등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해자도 처벌해야 VS 오히려 역효과
그렇다고 법원이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토대로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다. 결국 전문성과 공신력이 있는 노동당국이 괴롭힘의 진위를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노동청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전담하는 근로감독관들이 있다. 그러나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사측이 이미 조사한 걸 우리가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근로감독관들이 직접 무기명 설문조사를 돌려보는 등의 적극적 조사에 나설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선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법체계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조사와 피해자 보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사용자의 자율에 맡기거나 유도하는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해자까지 처벌하면 ‘괴롭힘 인정율’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해자가 형사재판에 넘겨지면 ‘범죄 입증은 무죄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대원칙이 적용된다. 그렇지 않아도 입증이 어려운 ‘괴롭힘 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형사재판의 무죄 판결을 민사재판에서 반박 증거로 내밀 경우 피해자가 배상받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법 조항에서 사용자의 조사와 조치 책임을 보다 구체화하고,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괴롭힘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현장의 변호사와 노무사들은 법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박성우 노무사는 “‘직장 내 성희롱 금지법’이 직장 내에 성인지 감수성을 뿌리내리게 했듯이 괴롭힘은 범법 행위라는 ‘괴롭힘 감수성’을 사용자나 노동자가 갖게 될 때 법이 당초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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